선교 간증글 – 이정진 자매 (9-5셀, 가나 한국어 캠프 선교 간증) 

가나 하나님 학교를 다녀오다.    –이정진 자매 (9-5셀, 가나 한국어 캠프 선교 간증) 

 올해 초 평소 기도 제목을 나누던 한국어 교사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습니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테마라는 곳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선교사님께서 사역하시는 GIU인터내셔날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여름방학 동안 한국어 캠프를 열고자 하시는데 한국어 교사가 와서 섬겨줬으면 하는 기도 제목을 담은 카톡이었습니다.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 사하라 이남 지역의 국제 교육 개발을 공부하기 전에 8년간 할렘에서 한국어 교사로 또 커리큘럼 전문가로 일한 경력과 경험이 이렇게 딱 들어맞게 쓰일 수도 있을까 싶어서 앞뒤 생각도 않고 당연히 가겠노라 카톡을 넣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저를 포함한 한국어 교사가 3명 그리고 한국에서 1명의 교사가 KoreanTeachers4Jesus이라고 임의의 그룹 이름으로 가나 한국어 캠프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의료 관계자들만 가는 줄 알았던 전문인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은 제 상상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또 사진으로 보이는 그 학교는 굉장히 부유한 사립학교인 데다가 가나 아이들에게 왜 굳이 한국어를 가르치려 하시나 싶어 가나 한국어 캠프 선교의 정당성과 목표에 대한 의구심에 몇 달간 밤잠을 설쳐가며 제 불편한 생각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선교 준비를 진행을 하려 하니 그 과정이 기쁘지 않은 것이 당연했습니다. 함께 가시는 선생님들은 정말 바쁘게 매 순간을 열심히 사시고 한국어 교육을 비롯한 코리안 커뮤니티에서 많은 활동을 하셔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각자의 출석 교회에서도 오랫동안 믿음의 훈련 또한 깊게 받으신 분들이십니다. 하지만 스케줄에 공간이 없을 만큼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다 보니 다국적 다지역의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야 하는 회의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간신히 1~2주에 한 번 아주 늦은 밤에서야 겨우 화상 회의를 진행하고 구글 드라이브를 사용해서 준비된 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대부분의 소통 과정이 온라인 플랫폼이나 카톡으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처럼 일할 때 고지식하다 못해 유연하지 못하고 인내심과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에게 충분하지 못한 회의 및 준비 시간과 수시로 바뀌는 캠프의 방향과 계획 등은 정말 견뎌내기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늘 혼자 혹은 리더로 일을 해왔는데 누군가와 함께 더구나 팀을 이끄는 리더 없는 구조 안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가시는 팀 선생님들을 이런저런 나의 성숙하지 못한 가치관과 의의 잣대로 판단하며 저보다 훨씬 경력도 나이도 많으시고 믿음도 깊으신 선생님들을 닦달했습니다. 

 솔직히 전 가나에 정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나 선교를 향한 한 발 한 발이 정말 괴롭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교육 선교를 몇 해 동안 꿈으로 키우고 품고 기도하던 내 자존심에 적어도 제가 제 입으로 아프리카 선교지에 ‘안 가겠다’고 말할 수 없어 하나님께 원하시는 길이 아니면 “저쪽”에서 캠프를 취소하게 해달라고 말도 안 되는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캠프는 예정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었고 제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가나 출발하기 일주일 전 주일예배 기도시간 중에 하나님께 아예 작정하고 “아…도대체 이게 뭐예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인데 왜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이 힘들고 함께 일하는 게 이렇게 괴로워요?” 하며 불평을 하자 제 맘속에 하나님께서 아주 잠잠하고 아련한 소리로 이런 말씀을 주시는 듯했습니다. “네가 사랑해주지 않으련?” 저는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주신 주님의 음성이 너무나 간절하셨고 또 제 완악한 마음까지도 달래시며 조심스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끝까지 가서 영혼을 구해라’하는 거창한 사명을 주시는 게 아닌 내가 함께 사역하시는 동역자들을 사랑해주면 안 되겠냐는 하나님의 부탁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더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원하시는 게 사역의 열매가 아닌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니 사랑하지 못했던 저의 강팍함을 회개하고 결단하고 제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렇게 결단하자 생각보다 함께 하는 작업이 나름 손쉬워졌고 모난 저를 배려하시고 조용히 기다려주신 동료 선생님들을 비로소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 정식으로 제 태도를 사과를 드리고 힘을 내어 함께 마무리 준비를 하고 드디어 가나 땅으로 향했습니다.  
 
가나 한국어 캠프는 원래 초등. 중학교GIU 학생과 주일학교 학생 그리고 근처 지역의 학생을 목표로 약 120명이 오길 기도했는데 준비 기간동안 절반 정도의 학생들만이 신청해서 선교사님들께서 맘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캠프 시작 날에 130명 이상이 몰려와 준비해 온 물품들과 교재들이 동이나 급하게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은혜 넘치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선교사님께 어린이 사역 훈련을 잘 받은 현지 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성경 분반 공부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 수업을 하며 매일 즐겁게 캠프 생활을 했습니다. 

예배 시간의 학생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에서 구원의 확신까지 이어가는 말씀을 들었고 비록 율동이 있는 신나는 어린이 찬양이지만 철저히 복음에만 기반을 둔 찬양을 따라 하며 구원의 말씀이 아이들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갔습니다. 한국어 수업과 모든 문화 활동들도 아이들의 컨디션과 날씨 상황에 따라 조절해가며 즐겁게 진행되었고 아이들과 교사들은 진심으로 한국어 캠프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퍼즐 조각으로 나눠진 세계지도를 팀을 지어 다시 원상 복귀하고 자기가 기도해주고 싶은 나라에 자기 이름을 한국어로 써서 붙이는 활동을 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붙이는 그 post it 한 장 한 장 하나님께 올리는 중보기도 같아서 은혜스러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과 활동은 정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땀에 늘 흠뻑 젖어 있고 날도 더운데 찰싹 달라붙으며 제 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실랑이를 하는 아이들을 품고 있는 것도 기뻤습니다. 하루 18시간의 일정을 소화해내면서 평소 조금만 스케줄에 변화가 생겨도 질색하던 우연성 제로의 제가 계속 즉석에서 요청되는 스케줄변경에도 군소리 없이 유연하게 바로 스케줄 수정작업을 마치고 빠른 시간 안에 현지 교사들과 나누고 활동의 내용을 공유하는 순발력까지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눈으로 목격한 제 삶의 큰 변화였습니다. 지난 3년동안, 특히 지난 6개월간, 제가 제 삶의 주인으로서 세우고 집착하던 삶의 계획들을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내려놓게 하시고 당신의 선한 길로 인도하심에 순응하며 따르게 하시는 하나님표 훈련의 열매가 이제야 눈에 조금씩 드러내는 순간이어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캠프 마지막 날에는 학교 역사상 가장 많은 학부모님의 참석 가운데 발표회도 하고 캠프 시작 날 130명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150여 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과 교사 전체가 함께 “좋으신 하나님”을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트위 (가나 현지어)로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캠프 사역 자체는 육체적으로 피곤했지만 아주 어렵지 않았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고 또 감사하며 잘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현지 아이들과 현지 교사들을 사랑하는 것은 쉬웠는데 왜 곁에 함께 고생하시는 분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은 캠프 기간 중에도 왠지 모르게 신발 속의 자갈처럼 불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끔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도 행동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지내왔지만 제 맘은 기쁨이 없이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저와 함께하셨던 분들은 객관적으로도 사랑스럽고 훌륭하고 쉽게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고 또 심지어 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인데 아마도 제 맘에 성령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사랑이 아닌 내 입맛에 따라 변하는 인간적인 사랑만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혼자가 익숙한 제가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18시간을 10여 일간 여럿과 계속 붙어 다니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식적으로 상대에게 맞춰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사랑을 의무감으로 여기며 내 의지로 해보려고 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이 실제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주변의 이웃과 동역자들에게 흘러가야 하는지 모르는 채 사랑하라는 간곡한 부탁과 계명을 무조건 제 의지로 생각날 때만 따르려 하니 여전히 무겁고 버겁고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불능자 같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 사랑의 지경을 넓히시길 원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캠프 사역과 교사연수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날이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혼자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도 갖고 책도 읽으며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맘이 들떴는데 뜻하지 않게 돌아오는 날 11시간 정도 머물게 되는 암스테르담 경유지에서도 일행들과 공항 밖 시내 관광을 쭉 함께 다니며 그분들을 모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갑자기 너무나도 유치한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사역이 끝났는데도 내가 왜 또 그래야 하는데’ 하며 사랑에 “사”도 모르는 불평 가득한 생각으로 투덜대며 가나에서의 마지막 주일 예배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는 중 하나님께서 가나에 오기 전에 저에게 “네가 사랑해주지 않으련” 하고 부탁하셨던 대상이 현지 학생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말씀하셨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제 편리와 제 의에 맞춰서 교묘하게 그 대상을 사랑하기 쉬운 현지 학생들과 교사로 바꿔 제한시켜놓고 맘껏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 사랑의 대상이어야 했던 동역자들에게는 겨우 사랑의 형식을 갖추고 종종 들끓는 불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예를 갖추려 감정 수위 조절하는 것에 힘을 썼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예와 범절을 지키는 것에 국한된 자세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제 가나 선교의 껍데기뿐인 사랑의 열매를 기쁘게 받아주시길 기도했던 저였고 선교와 사역의 본질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제 모습을 직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회개 기도를 드리고 애통한 맘으로 에베소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4장 1절~3절)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서로 용납함과 평안과 성령으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셨던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모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지금껏 저 자신을 사람들이 주는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제 나름의 테두리를 만들고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제 사랑의 테두리 안으로 용납하지 않았던 저를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멀리 있는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 하나님 사랑 안에 묶어 주신 동역자들을 힘껏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철없고 사랑을 몰랐던 저를 당신의 사랑의 성품을 닮아 세상으로 흘려 보내는 딸로 만드시려 먼 가나 땅으로 보내셨고 인내와 온유로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저도 사랑의 딸이 되기로 결단합니다. 우리 좋으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의 아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